제주도는 육지에 있는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여행지다. 그리고 한 번도 안 간 이는 있어도 한 번만 간 이는 거의 없는 곳이기도 하다.제주 여행과 관련해 바가지 요금 등 부정적 시선도 있지만,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다운자연환경과 독특한 문화 등은 분명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섬 제주에는 현대사의 큰 비극이 함께 하고 있다.광복 이후 6.25 한국 전쟁 사이 있었던 4.3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 4.3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1947년 3.1절 발포 사건을 시작으로 1948년 4월 3일, 남한 내 공산당 조직인 남로당의 무장 소요 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한라산 일대의 진입 금지가 해제되는 시기까지 7년여 기간의 제주지역 빨치산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다수의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된다.
그 목적인 공산당 빨치산 토벌이었지만, 그 과정에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이 크게 발생했다.최근 진상 규명 위원회를 통해 발표된 민간인 희생자의 수는 14,000여 명이었지만,실제는 25,000여 명에서 30,000여 명까지 추산된다.
제주에 큰 상처 남긴 비극
이 수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기도 하고 제주 중 산간 지역의 공동체가 초토화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는 빨치산들이 한라산을 중심으로 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그들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다수 희생됐기 때문이었다. 더 큰 문제는 민간인 희생자들의 상당수가어린이들과 노약자들이었다는 점이었다.
이 점에서 제주 4.3 사건은 공권력에 의한 국가 폭력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민간인 피해는 6.25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희생자들에게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혀있었고 6.25 한국전쟁 후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 냉전의 시대, 그 최 전방에 있었던 한국은 반공의 가치가 절대적이었다.
제주 4.3 사건이 남로당 빨치산 토벌의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무고한 희생에 대한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어렵게 했다.
살아남은 희생자는 물론이고 그 유족들도 그때의 일을 말하는 것조차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당시 희생자들의 유족 상당수는 연좌제로 사회 활동 자체에 큰 제약을 받고 있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재 조명된 비극
그들에게 진상 규명과 희생자들에 대한 사과 보상 등을 꿈도 꾸기 힘든 일이었다. 이에 수많은 제주도 사람들은 마음 가득 한을 담고 살아야 했다.이런 상황에 변화가 생긴 건 민주화가 진행돼 이후였다.
말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면서 서슬 퍼런 독재 권력의 그림자가 걷히면서 가려졌던 현대사의 검은 부분들이 세상에 드러났다.제주 4.3 사건 역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용기 있는 증언과 이를 지지하는 사회적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과거사를 재조명하는 일이 시작됐고 제주 4.3 사건도 이에 포함됐다.
제주 4.3 사건은 2000년대 들어 그 진상이 드러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사업들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제주 4.3 공원과 그 안에 자리한 기념공원은 희생자들과 유가족, 제주도민들 마음속에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다.
정파적 이해관계로 판단 할 수 없는 국가 폭력의 비극
물론, 아직도 그 진상이 모두 드러나지 않았고 그 사건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이들도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제주 4.3 사건은 이념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현대사의 큰 비극이었고 국가 권력에 의한 잔혹한 범죄였다.
이에 대한 진상 규명과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 회복은 현대사의 아픔을 치유하고 진정한 민주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이에 제주를 여행하는 이들이라면 제주 4.3 공원과 기념관을 방문해 당시의 상황과 명예 회복을 위한 노력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여행의 의미를 더할 수 있다.
사진, 글 : 지후니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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